음즐 (陰騭) – 남이 모르게 하늘이 도와줌

안녕하세요. 울산 혁신도시 중구 유곡동 새서울한의원 한의사 이은수 입니다.

오늘 쓸 내용은 이천 선생님의 ‘의학입문’ 내집에 실려있는 ‘음즐’ (陰騭)을 번역한 글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분히 권위주의적이고 운명론적 사고방식이지만 다른 것을 다 떠나서 너그럽고 착한 마음과 행동이 병에 안걸리게 하고 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영류금방’, ‘체인휘편’ 등의 의학 서적에서 모두 음즐의 방법을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 옛날부터 의술의 길을 얻은 사람들은 모두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명예를 추구하지 않으며 돈을 계산하지 않고 사람이 무식해도 꺼리지 않으며, 환자가 공손하거나 거만함을 가리지 않았다. 오직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함을 알고 환자의 병을 치료할 뿐이었으니 이런 마음을 가진 이후에야 비로소 의술을 밝히고 행한 것이다.
병이 오래되어도 낫지 않음에 이르러서는 더욱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며 닦고 반성하여 스스로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허손, 노채(결핵), 옹저, 귀와 눈을 쓰지 못하는 등의 병들은 하늘이 내린 벌이니 어찌 더욱 노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임금이 정한 규격에 맞추어 이를 말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의술은 선도와 통해서 (시작만으로) 음공(陰功)(남이 모르게 하는 선행)을 반은 쌓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음공을 반만 쌓은 것으로 그쳐서야 되겠는가?
우리나라의 ‘위선음즐록(爲善陰騭錄)’은 음공을 쌓는 모든 방법을 말한 책이다.
부유한 사람은 이자를 줄여주고 부채를 탕감해주며 첩을 돌려보내주고 친구 장례를 지내주며 고아를 시집보내고 고아를 길러주며 약을 나눠주고 관을 만들어주며 상을 치러주고 매장을 도와주며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며 대신 빚을 갚아주고 세금을 대신 내주며 돈을 돌려주고 재산을 돌려주는 것을 하는 것이 좋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은 원한을 밝혀주고 잘못된 것을 바르게 하며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고 죄를 용서해주며 형을 그만 살게 해주고 물에 빠지지 않게 해주며 재난으로부터 구제해주고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것을 하는 것이 좋다.
낮은 직위에 있는 사람은 헤어진 신을 고쳐주고 비가 새는 집을 고쳐주는 것을 하는 것이 좋다.
가난한 사람은 의술을 배워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봉사와 벙어리에게 시집가며 학과 물고기를 놓아주고 물에 빠진 개미를 건내주며 다친 까치를 치료하고 돈은 없지만 주머니를 털어 생명을 구하는 것을 하는 것이 좋다.

‘효순사실록(孝順事實錄)’은 음공을 쌓는 큰 근본을 말한 책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말을 잘듣고 뜻을 잘 받들 것이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 뜻을 잘 이어받고 남기실 말을 잘 행동에 옮길 것이며, 평상시에는 편안하신지 물어보고 잘 드시는지 살펴볼 것이며, 변화시에는 나만을 위해 간사함에 빠지지 않고 부모님의 뜻을 잘 따르고 있는지 살필 것이다.
어려서는 ‘육적회귤(陸積懷橘)’(육적이 부모님에게 드리려고 귤을 몰래 숨겨옴)처럼 할 것이며, 늙어서는 ‘내자희반(萊子戲斑)’(내자가 부모님이 나이를 잊고 지내시도록 아기가 입는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며 즐겁게 해드림)처럼 할 것이다.
계모를 모실 때는 ‘민손단의(閔損單衣)’(민손이 엄동설한에 갈대옷을 입힌 계모를 용서해달라고 아버지에게 간청함)처럼 할 것이며, 할머니를 섬길 때는 ‘이밀진정(李密陳情)’(아픈 할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모든 벼슬을 만류함)처럼 할 것이다.
가난할 때는 ‘자로부미(子路負米)’(자로가 백리나 떨어진 먼 곳에서 쌀을 져 온다는 뜻)처럼 할 것이며, 미천할 때는 ‘유곤궁경(庾袞躬耕)’(유곤이 몸 소 밭을 감)처럼 할 것이다.
몸을 간수할 때는 ‘자춘상족(子春傷足)’(자춘이 발을 다치고 부모님이 근심하실까봐 걱정함)처럼 할 것이며, 꾸지람을 들을 때는 ‘백유읍장(伯瑜泣杖)’(부모님의 회초리가 아프지 않음에 부모님의 기력이 없으심을 슬퍼함)처럼 할 것이다.
이밖에도 ‘代命代死’ ‘求母尋母’ ‘刻木廬墓’ ‘感盜獸’ ‘息火退水’ ‘召祥致瑞’ ‘訪藥夢藥’ ‘吮癰嘗糞’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모두 다 살펴보고 마땅히 책상 옆에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두 책이 표리가 되어 근본이 서고 쓰임이 행해진 이후에야 미미한 것들로 인하여 현저하게 나타나게 된다. 비록 한 가지 일, 한 가지 물건이 아무리 작더라도 또한 하늘과 땅을 움직이고 귀신에게 까지 그 마음이 닿아서 복택이 내려오기에 충분하다.
천하와 후세를 가르치는 마음이 지극히 정미롭고 지극히 어질어서 주서의 홍범과 선후가 되어 규준(規準)이 된다.

대개 ‘효순사실록’은 즉 ‘서경’의 ‘惟天陰騭 彛倫攸敍’(하늘이 몰래 도와 떳떳한 윤리가 널리 퍼진다)를 말하는 것이고, ‘위선음즐록’은 즉 ‘서경’의 ‘曰食曰貨 利用厚生’(음식물과 재화를 이롭게 써서 삶을 풍요롭게 함)을 말한 것이다. 두 책을 통해 감응이 빠르게 일어나 내몸에 영화로움이 일어나고 경사가 후예에게 미친다는 것은 ‘서경’의 ‘曰壽曰富曰康寧 嚮用五福’(오래 살고 복되고 건강해서 다섯 가지 복을 누리고 삼)을 말한 것이다.
다스리고 가르치는 아름다움이 이와 같이 밝고 깨끗하니 집집마다 가르치고 가정마다 깨달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어리석은 사람들은 보답과 응답함에 빠져서 뜻을 갖고 선행을 하고 매번 피땀같은 돈으로 이익이 없는 낭비를 하고 심하면 심신에 누가 되고 명예와 절개를 훼손하는가? 또, 높고 밝은 사람들은 큰 윤리에만 매달리고 작은 일은 소홀히 하여 매번 뜻이 편벽되어서 자기가 편한 것을 도모하고 심하면 일을 방해하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쳐서 원성과 저주를 부르는가? 모두 임금이 만든 것을 잘 체득한 것이 아니다.
임금이 정한 밝은 말은 위로는 제상으로부터 아래로는 거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고 생각하면 일상생활에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이 아닌 것이 없으니 예를 들어 사람이 목말라하면 한 잔의 물을 주고, 물건이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면 바로 잡아주면 되니 모두 일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선행을 행하도록 장려하고 권하는 것은 음즐의 지극히 큰 것이어서 어찌 재산을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은혜로움과 비교가 되겠는가? 화복이 느껴 응답함에 이르러서는 한 터럭도 마음보다 먼저 싹을 틀 수 없으니 기기(氣機, 무형의 일들이 진행되는 원리)가 자연히 그러한 묘함이 있는 것이다.

대개 나의 몸이 중기(中氣, 음식물의 기운)를 받아서 태어나기 전에는 마음이 하늘에 있어서 오행을 움직이고 쓰게 되지만, 나의 몸이 이미 중기를 받아서 태어난 후에는 하늘이 나의 마음에 있어서 오사(五事,용모, 말하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것)를 주관하게 된다.
한 생각이 착하면 반드시 그 일이 끝난 후에야 길해지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하늘과 서로 닮아서 길함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는 것이다. 하물며 이런 생각이 오래 쌓여서 아름다운 징조가 일일이 응하여 나타남이여!
한 생각이 악하면 반드시 그 흔적이 드러난 후에야 흉해지는 것이 아니니 이것은 하늘과 서로 멀리 떨어져서 흉함이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없는 것이다. 하물며 이런 생각이 오래 쌓여서 더러운 징조가 일일이 응하여 나타남이여!
혹은 말한다. 지금의 선함이 반드시 복을 얻지 못하고 악함이 반드시 화를 얻지 못하는 것은 기기(氣機)와 상수(象數)가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누가 수는 일에서 시작하고 일은 마음의 한 생각임을 모르겠는가? 의리상 당연히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것은 수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리상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하는데 하는 것도 또한 수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한다. ‘황극(皇極)’(세상이 돌아가는 큰 이치)에 수를 말하지 않은 이유는 수로 모두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착한 일을 하고 반드시 복을 얻지 못하는 것은 우연히 착한 일을 해서 하늘에 미치기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쁜 일을 하고 반드시 화를 얻지 못하는 것은 우연히 나쁜 일에 빠져서 하늘에 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착하면 복을 받고 나쁘면 화를 받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온 하늘의 도리이다. 어찌 지금에 와서 이를 의심할 수 있겠는가?
오직 세세하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뒤에 하늘의 이치를 알고 나서도 착한 일에 용감하게 뛰어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오직 항상 넓고 넓어서 새지 않기 때문에 뒤에 하늘의 무서움을 두려워하여 끝까지 나쁜 일에 빠지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오직 돌고 돌아서 끝도 없이 변화하고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후에 군자가 비록 나쁜 처지에 처했더라도 착한 일을 즐기고 원한을 부르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대개 하늘의 뜻이 있음이 사람으로서 당연히 닦고 해야 하는 일임을 깊이 믿기 때문이다.
아! 사람이 알지 못하는 착한 일이 가장 착한 일이고, 사람이 알지 못하는 나쁜 일이 가장 나쁜 일이다.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자기만 홀로 알고 있다면 하늘을 두려워 할 것인가? 사람을 두려워 할 것인가? 그러므로 말한다. 화와 복은 나 스스로 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의학이 매어 있는 것이 매우 엄중하다. 반드시 처자식을 맡기고 삶과 죽음을 내놓은 이후에야 의학을 말할 수 있다. 병이 들어 생명을 기르는 사람도 또한 이러한 뜻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들은 바를 서술해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에게 질문하여 임금이 만든 것을 같이 지키자고 한 것이다. 말하고 토론하기를 좋아해서 감히 글을 쓴 것이 아니다.

한의학은 봉건사회에 봉사한 학문이 아닙니다. 음즐은 욕심으로 인해 몸과 마음을 지키지 못해서 병이 든 사람들에 대한 경고문입니다. 5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다시 곱씹어보아도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 진리입니다. 건강을 지키는 지혜가 담긴 글이자 의학에 입문하는 기본이 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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